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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가이성의 원조, 마키아벨리

국가이성이란 무엇인가? 국가의 생존과 작동원리에 대한 통찰력이다. 국익 실현을 위해서 필요한 결단을 내리는 정치적 이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국가이성은 대내외적으로 국가 혹은 국익을 정치적 사고와 행위의 절대적 기준으로 내세운다. 『국가이성에 대한 이념사』(Die Idee der Staatsräson)를 저술한 독일 학자 프리드리히 마이네케(Friedrich Meinecke)는 국가이성을 “국가의 운동법칙(Bewegungsgesetz des Staates)”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국가이성에 대한 논의는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가 1513년에 집필한 『군주론』(Il Principe, 1532년에 출간)에서 유래되었다. 그런데 마키아벨리 자신은 국가이성이라는 개념을 생전에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국가이성의 토대가 되는 정치철학을 제시했을 뿐이다. 마키아벨리 사후에 국가이성(Ragion di Stato)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조반니 보테로(Giovanni Botero)다. 보테로는 1589년에 마키아벨리의 국가와 정치에 대한 철학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이 개념을 사용했다. 그러면서 16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국가이성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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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키아벨리가 남긴 숙제

마키아벨리를 평가할 때는 그의 저작 전체를 머릿속에 넣고 『군주론』을 봐야 한다. 그의 저작에는 보수적 요소와 개혁적 요소 그리고 혁명적 요소가 공존한다. 어느 하나의 정치적 방향에 치우쳐있지 않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의 이성 혹은 자기보존능력이었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15∼16세기에 공화제와 군주제는 현대식 표현으로 좌ㆍ우 진영의 정치적 입장이었다. 마키아벨리는 귀족과 평민의 정치적 대결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로마사 논고』, 제1권 제4장) 이들의 정치적 대립과 갈등을 통해서 자유를 증진하는 법과 제도가 발전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 비록 기회주의자로 오해받고 실패했지만 – 서로 다른 성격의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를 쓰면서 진영논리를 넘어서려 했다. 1512년에 공직에서 물러난 후 마키아벨리에게 저술활동은 정치적 행위의 일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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