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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국가의 위기와 국가이성

최종 수정일: 7월 1일

1. 법치국가의 개념

2. 권력분립에 대한 오해

3. 잘못된 권력분립과 법치국가의 위기

4. 비상사태와 법의 이성

5. 국가이성의 새로운 패러다임



1. 법치국가의 개념


 법치국가란 통치자의 자의적 판단과 결정으로 통치 행위를 추진하거나 정책을 변경하고 집행하는 국가가 아니라, 법에 근거해서 실시하는 국가를 말한다. 또한 법의 지배를 통해서 권력의 남용을 억제하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를 말한다. 법치국가의 개념은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 후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도입되었다. 특히 유럽 대륙에서는 절대군주의 권력을 제한하는 입헌군주제가 추진되면서 헌법국가 혹은 법치국가 개념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정치적 이성, 특히 권력(자)의 이성은 법의 이성을 무시하거나 넘으려고 한다. 권력 자체가 탐욕스럽기 때문이다. 반면에 법의 이성은 권력의 남용을 억제하려고 한다. 그래서 법치국가에서는 어떻게 권력 행사의 방법을 규정함으로써 법의 정신을 구현하고, 법의 지배를 실현하느냐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치를 법이 정한 틀 내에서 구현하고, 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서 추진하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헌법을 정치가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로 인식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법과 정치의 관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 상황에 따라 변한다. 따라서 법에 근거한 통치 행위도 시대 상황에 따라 변화를 겪었다.


형식적 법치국가와 실질적 법치국가


법치국가 형성 초기에는 정치적 투쟁을 통해서 국민의 기본권이 확립되며 국가가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에 저항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기본권에는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 종교 및 사상의 자유 그리고 언론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법의 형식을 빌리면서 법을 수단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형식적으로는 법치국가지만, 실질적으로는 법치국가가 되지 못한다. 법치국가의 본질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에도 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합법적으로 제한하는 시도가 있었다. 이른바 독일의 나치 파시즘이 행한 ’법률로 포장된 불법통치‘가 그것이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민주국가가 아니면 진정한 법치국가를 실현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몽테스키외(1689-1755)는 계몽주의 시대의 대표적 프랑스 정치사상가다. 그의 권력분립론은 전 세계의 많은 헌법에 반영되었다.
몽테스키외(1689-1755)는 계몽주의 시대의 대표적 프랑스 정치사상가다. 그의 권력분립론은 전 세계의 많은 헌법에 반영되었다.

진정한 법치국가의 조건


진정한 법치국가가 되려면, 설령 법률이 불가피하게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에도 올바른 헌법 정신에 입각해서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것은 통치행위가 합법성(Legalität)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고, 정당성(Legitimität)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이라는 형식보다, 법의 내용을 더 중요시하게 된 것이다.


의회가 제정한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를 심사받는 제도(위헌법률심사ㆍ심판제도)는 이런 맥락에서 도입되었다. 이런 것들은 형식적 법치주의를 실질적 법치주의로 변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아울러 악법을 통한 통치 혹은 권력의 집중을 통한 독재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수단으로 권력을 통해서 권력을 견제하는 권력분립이 법치국가의 핵심 조직 원리로 등장했다. 그런데 이 권력분립에 대한 오해가 널리 퍼져있다.


2. 권력분립에 대한 오해

     

권력분립(Gewaltenteilung)이란 권력이 과도하게 한 사람이나 하나의 그룹 혹은 하나의 기관에 집중되는 것을 제도적으로 방지하는 장치다. 즉, 권력의 집중을 통한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장치다. 이것은 법을 제정하고, 수정ㆍ폐기 및 대체하는 기관(입법부)과 법을 집행하는 기관(행정부) 그리고 법을 기준으로 분쟁을 판결하는 기관(사법부)에 권력을 분산시켜서 서로를 견제하게 하는 법치국가의 기본 조직 원리다.

     

고전적 권력분립 이론


권력분립론을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은 영국의 존 로크(Locke)다. 그는 입법부와 행정부의 권력분립을 주장했으며, 사법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에 몽테스키외(Montesquieu)가 재판을 담당하는 권력(사법부)의 분립을 추가했다. 몽테스키외 자신은 그의 저서 『법의 정신』(De ĺ’esprit des lois)에서 사법부라는 표현을 명확하게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론을 3권분립론이라 말한다.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1748년에 발간된 『법의 정신』은 당시의 정치사상과 훗날의 법치국가 확립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1748년에 발간된 『법의 정신』은 당시의 정치사상과 훗날의 법치국가 확립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몽테스키외의 철학에 대한 오해


몽테스키외가 권력분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이유는 그의 저서 『법의 정신』에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권력을 가진 자는 누구나 그것을 남용하게 되고 한계에 이를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늘 경험하게 된다. (…)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게 하려면, 필연적으로 권력이 권력을 제지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몽테스키외에게 권력분립의 진정한 목적은 권력 기구가 서로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견제하되 협력하면서 균형(Balance)을 잡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권력분립을 이야기할 때면 대체로 견제와 균형에 대해서는 말하지만, 협력은 거론하지 않는다. 권력분립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국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고, 효율적인 국가 운영은 권력기구 상호 간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함에도 그렇다.


마치 몽테스키외가 권력분립론에서 권력기구 상호 간의 협력은 배제한 채, 견제와 균형만을 주장한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것은 오해다.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론을 기계적인 권력분립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법치국가의 필요조건에 불과한 권력분립


권력분립이라는 명분하에 각각의 권력기구가 상대 기구의 임무수행을 방해하고 무력화시킬 경우에 국가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몽테스키외, 위의 책) 권력분립이 국가 기능의 와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력분립은 법치국가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권력분립을 한다고 저절로 법치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론은 국가 기능의 단점을 막고, 장점을 추구한다는 가정하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몽테스키외 자신도 정부가 지혜를 갖췄을 때에만 권력분립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몽테스키외, My Thoughts(Mes Pensées), Nr. 918) 국가이성이 부재한 곳에서는 권력분립이 효과를 볼 수 없다는 말이다.


몽테스티외의 저서 My Thoughts(Mes Pensées)
몽테스티외의 저서 My Thoughts(Mes Pensées)

필자는 앞에서 진정한 법치국가가 되기 위해선 민주주의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사이엔 긴장관계가 존재한다. 다수의 권리 주장 및 보호가 법의 본질을 훼손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렇게 모순 속에 움직인다. 그래서 민주적 법치국가에도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위기의 수준에 따라 비상사태가 전개될 수 있고,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비상조치가 다시 법치국가의 근본을 훼손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3. 잘못된 권력분립과 법치국가의 위기

     

필자는 그동안 「국가이성 시리즈」에서 유럽 역사에 집중했다. 그런데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잘못된 권력분립이 법치국가의 위기를 초래한 사례가 최근 대한민국에서 발생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예외적으로 서양 근대의 역사 대신에 대한민국 사례를 거론하고자 한다.


2022년 5월에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 민주당이 장악한 국회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을 시작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하 윤석열)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이하 한덕수)에 대한 탄핵 등 총 30건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문재인 정부까지 약 74년 동안 발의된 탄핵소추안 21건보다 많다. 민주당이 이렇게 3년 남짓한 기간에 발의한 30건 중에서 국회에서 가결되어 헌법재판소로 이첩된 것은 2025년 3월 말까지 13건이다. 이 중 4건을 제외한 9건의 탄핵 심판이 이루어졌는데, 모두 기각되었다.(ECONOMY Chosun, 582호, 2025년 3월 31일)


이재명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4년 12월 27일 국회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탄핵소추안 투표를 마친 후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 출처: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122838887
이재명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4년 12월 27일 국회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탄핵소추안 투표를 마친 후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 출처: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122838887

한덕수를 포함해서 헌재에서 탄핵 기각이 이루어진 공직자 9명의 직무정지 기간은 평균 5개월이다. 요건이 충족되지도 않은 탄핵을 국회(특히 민주당)가 남발해서 행정부의 기능을 무력화시킨 결과가 초래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민주당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이하 이재명) 시절에 대북 송금 의혹과 대장동ㆍ백현동 특혜 개발 의혹 등을 수사한 박상용 검사와 강백신 검사 그리고 엄의준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민주당이 장악한 국회가 검사들을 탄핵한 것이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가 아니라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이것은 국회에 의한 사법부 길들이기 시도에 다름 아니다.


법치국가에서 다수제(多數制)보다 중요한 것은 「법의 정신」 혹은 법의 이성이다. 다수제에도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분립이 법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 도입된 것이라면, 입법부의 다수제 역시 법의 정신을 지키는 범위 내에서 관철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정당성을 확보하지 않는 다수제는 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장악한 국회는 다수제를 이용해서 기각될 것이 뻔한 탄핵을 반복하고, 이를 통해서 행정부의 업무 수행을 방해했다. 이것은 전근대적인 사건으로 ‘인간의 지배’가 ‘법의 지배’를 대체한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법의 정신」을 완전히 뒤집었다는 말이다.


한편, 대한민국 사법부는 똑같은 사안에 대해서 1심과 2심이 극단적으로 반대의 판결을 내놓기도 했다. 이재명이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것에 대해서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방법원)는 이재명에게 ‘일부 유죄’를 선고했다. 벌금 100만 원 이상이 확정되면 피선거권을 박탈당하는 상황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것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모습. 2025년 6월 27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대법원판결과 윤석열 구속취소 결정과 관련해서 조희대 대법원장 고발사건을 내란 특검에 이첩했다.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250627060700004
조희대 대법원장의 모습. 2025년 6월 27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대법원판결과 윤석열 구속취소 결정과 관련해서 조희대 대법원장 고발사건을 내란 특검에 이첩했다.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250627060700004

그런데 2심 재판부(서울고등법원)에서 2025년 3월 16일에 1심 판결을 뒤집고 이재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법원이 2025년 5월 1일에 전원합의체에서 2심의 무죄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파기환송) 그러면서 유죄 취지의 해석을 했다. 그런데 서울고등법원이 대법원의 파기환송을 무시하고 2025년 6월 18일에 예정되어 있던 재판을 6월 9일에 무기한 연기(추후 지정)한다고 선언했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 재판부가 각 심급마다 다른 판결을 내리더니, 아예 재판이 중지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법관들의 판결이 객관성을 상실하고, 정치적으로 편향되었음을 이보다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없다. 이것은 사법부가 법치국가의 기반을 흔드는 전형적인 사례다.


또한 윤석열은 대통령으로 재직할 당시에 2024년 12월 3일에 계엄을 선포하기 전 국회에서 통과된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서 세 차례(2024년 1월 30일, 2024년 10월 2일 그리고 2024년 11월 26일)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것은 국회를 무시한 잘못된 권력 행사다. 특히 2024년 12월 10일에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국회 재표결을 앞두고 1주일 전에 비상계엄을 선포해서 국회의 기능을 무력화시키려고 한 것은 더더욱 잘못된 통치행위다.


이렇듯 최근에 대한민국의 권력기관들은 하나의 권력기관이 다른 권력기관의 업무 수행을 방해하고 기능을 마비시키려고 했다. 국회와 행정부 그리고 사법부 모두 법치국가의 원칙을 훼손하면서 국가를 혼란에 빠트린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모습. 출처: KBS 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모습. 출처: KBS 뉴스

4. 비상사태와 법의 이성

     

앞에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법치국가도 내적 요인으로 위기에 처할 수 있음을 보았다. 그렇다면 법치국가의 위기는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명분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법치국가의 위기가 어떤 양태를 띠느냐에 따라 다르다. 위기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단순한 경제위기가 있고, 경제위기와 정치 위기가 중첩된 것이 있으며, 여기에 안보 위기가 추가된 것도 있다. 또한 정권 차원의 위기가 있으며, 체제 전체를 위협하는 위기도 있다. 위기 상황이라고 해서 어느 때나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에서 갈등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정치적 위기는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정치적 위기를 정치로 해결하지 않고, 군사 수단을 동원해서 해결하려는 비상조치는 국민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 비상사태란 현행 헌법에 따른 법 집행과 평상시 수단으로 국가가 처한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할 때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 비로소 선포할 수 있는 것이다.


비상사태의 슬로건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법이란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국가가 법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국가의 생존과 무너진 법질서의 회복을 위해서 일시적으로 법의 지배를 정지시킨다는 것은 비상사태 선포 시 으레 내세우는 명분이었다. 치안 및 안보 상황을 고려해서 필요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정지시키는 것도 통상적인 비상조치에 포함된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2025년 4월 4일에 12ㆍ3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하여 파면 선고를 하는 모습. 출처: https://www.ccourt.go.kr/site/kor/ex/bbs/View.do?cbIdx=1129&bcIdx=4243079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2025년 4월 4일에 12ㆍ3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하여 파면 선고를 하는 모습. 출처: https://www.ccourt.go.kr/site/kor/ex/bbs/View.do?cbIdx=1129&bcIdx=4243079

많은 민주국가들은 헌법에서 조건을 갖춘 비상조치는 실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비상조치 자체가 불법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정당성을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국가의 강요된 조치를 인내하는 국민 입장에서는 왜 자신의 기본권을 희생해야 하는 문제를 제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유를 일정 부분 일시적으로 희생하더라도, 그렇게 해서 다시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믿음과 희망을 비상조치가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비상조치가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분산된 국민의 힘을 결집시키며 대내외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법치국가의 근본이 흔들리고 내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진정한 위기 극복은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비상사태에서도 치안과 안보 문제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닌 한, 법치를 훼손해선 안 된다.


비상사태란 위기 상황에서 법과 현실에 생긴 괴리를 없애고, 현실에 부합한 정치와 법치를 할 수 있도록 도우며 정상 상태를 회복하기 위한 과도기적 수단일 뿐이다. 헌법의 허점을 이용해서 입법부가 입법 독재를 하며 법질서를 무너트리는 경우에 대통령령으로 새로운 제도적 장치를 만들며 대응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통치자는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를 중재할 수 있는 기구를 (잠정적으로) 설치하고 정치적 위기를 해소하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후, 만약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권이 있다면 국회를 해산하고 즉시 총선을 실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 낸 6월 항쟁 당시의 모습. 1987년의 헌법 개정 이후 출범한 제6공화국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출처: https://www.g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1789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 낸 6월 항쟁 당시의 모습. 1987년의 헌법 개정 이후 출범한 제6공화국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출처: https://www.g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1789

문제는 현재 한국에서 국회가 입법 독재를 해도 실정법상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헌법 개정도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만, 현행 헌법상 국민투표를 실시하기 전에 국회 재적의원 2/3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 국회가 협조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오늘날의 한국 상황과 관련해서 몽테스키외의 다음과 같은 경고는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모든 인간사에 종말이 있듯, 우리가 이야기하는 국가도 언젠가는 자유를 잃고 멸망할 것이다. 로마, 스파르타, 카르타고도 멸망했다. 입법권이 집행권보다 더 부패하게 될 때, 이 나라도 멸망할 것이다.”(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이런 식의 국가 붕괴를 피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우리나라 헌법 제72조에 따라 대통령이 국민투표부의권(國民投票附議權)을 행사해서 국민투표로 입법부의 독재를 견제하는 것이다. 둘째, 국민투표로도 성과를 보지 못하면 최후 수단으로 비상사태 선포를 생각할 수 있다.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Charles de Gaulle, 1890-1970). 1959년에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1965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으나, 1969년 지방 제도 및 상원 개혁에 관한 국민투표에서 패한 후 사임했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Charles de Gaulle, 1890-1970). 1959년에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1965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으나, 1969년 지방 제도 및 상원 개혁에 관한 국민투표에서 패한 후 사임했다.

그러나 이러자면 행정부 수반이 먼저 법질서를 존중하고, 준수해야 한다. 통치자 자신이 법질서를 준수하지 않으면서, 법질서를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국민투표를 실시하거나, 비상사태를 선포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행정부 수반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하고도 체제 위기를 막을 방법이 없을 때, 그리고 국민도 정권 차원의 위기가 아니라 체제 위기라는 점에 공감할 수 있을 때 국민투표로 여소야대의 입법부를 심판하게 하는 것이 위기 극복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직접 민주주의로 간접 민주주의 약점을 보완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국회가 국민투표의 결과를 부정하고 거부한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비상사태 선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것은 권력 강화를 위해서 법의 정신을 왜곡하며 법질서를 무너트리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만약 법치국가에서 비상조치가 법의 이성을 무너트리는 한쪽 방향으로만 추진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비상사태 선포의 정당성을 국민에게 납득시킬 수 있으려면 통치자의 정치 행위가 법치국가의 원칙 혹은 법의 이성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비상조치를 취하고 난 후에 위기가 극복되면 해당 조치가 올바른 것이었는지도 민주적 절차를 통해서 심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래야만 법질서 회복을 위해서 일시적으로 법의 지배를 정지시킨다는 모순이 납득될 수 있을 것이다.


법의 이성과 국가이성 사이에 존재하는 딜레마를 해소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민주적 절차와 결정 과정을 존중하는 것이다. 사전에 비상조치를 취할 수 있는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헌법에 명시하는 것 역시 법치국가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입헌적(立憲的) 국가이성이다.

     

2024년 10월 4일에 헌법에 규정된 국민투표 범위를 늘리자고 제안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2024년 10월 4일에 헌법에 규정된 국민투표 범위를 늘리자고 제안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5. 국가이성의 새로운 패러다임

     

근대 초기에는 초법적 통치행위가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정치 행위였다. 중세식 법ㆍ제도의 속박을 넘어서 새로운 시대를 창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내외적 분쟁에 시달리고 생존을 걱정해야 했던 당시에 국가들의 초법적 정치 행위는 국가이성이라는 단어로 포장되었다. 그러면서 국가이성이 모든 변화의 시작과 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가이성은 시대정신으로 기능했다.


동시에 절대주의 국가에서 국가이성은 권력(자)의 이성과 동일시되었다. 통치자의 권력을 강화하고 왕권을 안정시키는 정치 행위가 국가이성으로 정당화된 것이다. 그러나 18세기 말에 미국 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으로 헌법에 기초한 근대국가, 즉 헌법국가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헌법국가 혹은 법치국가에서 초법적 정치 행위는 예외적인 비상사태에나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국가이성이라는 용어는 학계의 논쟁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를 사회계약론이 대신 차지하게 되었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절대군주의 자리를 헌법과 민족이 대체하는 과정에서 국가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국가이성에 대한 인식이 변화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기도 했다. 권력(자)의 이성과 국가이성이 분리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국가이성이라는 용어는 사라지거나, 아니면 부정적인 의미로만 사용되었다. 국가이성이 근대국가 형성 초기에 자신의 사명을 다한 후 공식 석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고 실물 정치에서 국가이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정치 행위, 즉 국가이성의 구태는 현실에서 계속되었다.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의 동판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외눈의 거인 키클롭스(Cyclopes)가 무기를 만들고 있다. 키클롭스는 천 개의 눈을 가진 감시자 아르고스(Argus)와 대비된다. 근대국가는 무기 생산과 감시ㆍ정찰을 함께 중요시했다. 이것은 강함과 지혜를 동시에 추구했던 근대의 국가이성을 상징하고 있다.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의 동판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외눈의 거인 키클롭스(Cyclopes)가 무기를 만들고 있다. 키클롭스는 천 개의 눈을 가진 감시자 아르고스(Argus)와 대비된다. 근대국가는 무기 생산과 감시ㆍ정찰을 함께 중요시했다. 이것은 강함과 지혜를 동시에 추구했던 근대의 국가이성을 상징하고 있다.

비록 국가이성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근대국가가 완성된 이후에도 역사적으로 행정부가 자신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국을 주도하기 위해서 법치를 훼손하며 권력 유지의 기술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하여 법치국가에서도 체제 위기가 발생하게 되었다. 특히 정치ㆍ경제적 위기가 치안 및 안보 위기와 중첩되는 경우에 그랬다. 이에 법치국가의 원칙을 훼손해서라도 초법적 정치로 국가와 법질서를 유지하고 보존할 수만 있다면 일시적으로 법질서의 훼손을 감수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렇게 해서 비상사태의 필요성과 함께 국가이성은 부활했다.


그러나 국가이성이 내포했던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비상사태와 함께 다시 부활한 초법적 정치 행위를 학자들이 노골적으로 국가이성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비상조치권/국가긴급권은 비상사태의 해결 수단으로 헌법에 명문화될 정도로 부활했다. 그러면서 법치국가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행정부의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2001년 9월 11일에 뉴욕 소재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이 알카에다가 납치한 비행기와의 충돌로 불에 타면서 파괴되는 모습. 이 사건으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1년 9월 20일에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2001년 9월 11일에 뉴욕 소재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이 알카에다가 납치한 비행기와의 충돌로 불에 타면서 파괴되는 모습. 이 사건으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1년 9월 20일에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특히 2001년에 미국에서 9ㆍ11 테러가 발생한 후 각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비상조치권을 강화하면서 비상사태가 정상사태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일상화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테러 대응 차원의 비상조치를 언급하면서 유럽 정치학의 학술 서적이나 논문의 행간에서 국가이성이라는 개념이 조심스럽게 등장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이와는 달리 통일 전 옛 서독이 나치 독일의 파시즘을 극복하고 새로운 국가로 태어나는 과정에서 추진했던 외교ㆍ안보 정책을 소수의 학자들이 국가이성이라는 관점에서 소개하기도 했다.


정리하자면, 굴곡진 역사를 지나온 국가이성이라는 개념이 분절된 형태로 소개되면서 아직 긍정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역사가 그렇게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국가이성의 이런 한계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국가이성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근대 초기처럼 법치를 훼손하는 국가이성이 아니라, 법치를 돕는 국가이성, 즉 입헌적 국가이성으로 재구성되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경쟁사회에서 인간이 자기파괴적 속성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수록, 다양하고 복합적인 위기에 대응하는 국가의 능력이 요구되고 있다. 변화하는 현실과 다양한 도전 앞에서 국가이성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어떤 내용으로 채워져야 하는지는 필자가 계속 고민하고 풀어야 할 숙제다. 다음에는 「이데올로기 시대의 국가이성」을 주제로 2〜3회에 걸쳐서 글을 쓸 것이다.

     

※ 저는 2024년 9월 초부터 2025년 7월 초까지 1년 동안 두 달 간격으로 「국가이성 시리즈」의 글을 홈페이지에 게시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2025년 9월과 11월 초에 「이데올로기 시대의 국가이성」에 대한 글을 게시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서 향후 두 번은 2개월이 아니라, 3개월에 걸쳐서 글을 홈페이지에 게시하려고 합니다. 즉, 2025년 10월 초와 2026년 1월 초에 「이데올로기 시대의 국가이성」에 대한 글을 게시하려고 합니다. 「이데올로기 시대의 국가이성」에 대한 글을 2026년 3월 초에 한 번 더 쓰게 될지는 그때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내년에 「국가이성 시리즈」를 2개월 간격 혹은 3개월 간격으로 게시하게 될지는 그때그때 주어진 사정에 따르겠습니다.

새로 게시할 글의 일정에 대해서는 사전에 페이스북이나 마지막 원고의 끝부분에 공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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